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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진 헤리티지 클래식, 일명 '섹터 다이얼'

지수스 2020. 6. 22. 21:43

'복각'은 원래 인쇄 쪽에서 쓰이던 용어입니다

오래된 판각본을 원형을 모방해 다시 판각작업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요즘 복각은 주로 예전에 판매했던 제품을 다시 생산해 판매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몇 년 전부터 시계업계에서 유행하는게 이 '복각'입니다

과거 제품을 되살려 다시 내놓는 것인데 물론 과거 제품과 완전히 동일하게 내놓는 것은 아닙니다

주로 디자인 요소는 살리되, 현대적인 요소를 더해서 새로운 제품으로 내놓게 됩니다

 

론진은 1832년에 설립되어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시계회사입니다

현존하는 시계 회사들 중에서도 오래되기로는 수위권 안에 들어가는 수준이고

론진의 날개 달린 모래시계 로고는 시계 회사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로고입니다

이런 복각 열풍이 역사가 오래된 회사에게는 유리한 편입니다

아무래도 복각을 하기 좋은 과거 모델이 많을 것이고

과거 수준 있는 시계 회사였던 론진이라면 그럴 수 있는 모델이 더욱 많을 것입니다

 

론진도 이런 것을 잘 알고 있는지 복각 제품이 포진한 '헤리티지'라는 라인업이 따로 존재합니다

론진의 인기 제품 중 하나인 레전드 다이버가 들어 있는 제품군인데

작년 하반기에 론진이 발표한 '헤리티지 클래식'도 이 라인에 속해 있습니다

공식 명칭은 '헤리티지 클래식' 이지만 일명 '섹터 다이얼'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이 제품은

발표와 동시에 시계 매니아들 사이에서 꽤 화제가 되었고

국내에서 실제 판매를 시작한 것은 올해 상반기로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처음 디자인을 접하고 이건 사야할 가치가 있는 제품이라고 느꼈고

국내에 풀린지 오래되지 않은 시점,

한 국내 정식 매장을 통해 이 제품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기계식 시계 소유는 최대 2개까지만' 이라는

개인적인 방침에 따라 론진의 하이드로 콘퀘스트를 방출했습니다

 

 

1. 개봉

 

론진의 헤리티지는 론진의 매출에 큰 비중을 가진 라인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론진의 매출은 다른 시계 회사들도 그렇듯

하이드로 콘퀘스트가 있는 엔트리급 스포츠 라인이나

베스트 셀러인 '마스터 컬렉션'이 포함된 워치메이킹 트래디션 라인 쪽이 책임지는 것 같았습니다

헤리티지 라인은 대중성보다는 진짜 기계식 시계 매니아 들을 위해

서비스를 하는 성격이 강한 라인업이라고 느꼈습니다

 

 

구입하고 박스를 받아 들었을 때부터 그런 인상을 받았습니다

박스 하나만 놓은 사진을 본다면 이유를 모를 것입니다

 

 

아이폰 XR과 비교한 박스

하지만 옆에 비교대상이 있다면 확연히 느껴집니다

론진의 일반 라인과 비교해 많이 커다란 박스입니다

구입할 때 매장 직원분이 꺼내고 있는게 워낙 크길래

헤리티지 클래식에 딸려오는 박스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케이스에 시계를 담아 주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론진 로고가 은박으로 새겨진 뚜껑을 열어보면...

 

 

원목으로 된 내부 케이스가 나옵니다

 

 

가운데는 박음질이 들어간 가죽띠가 둘러져 있습니다

천연 가죽은 아니고 인조 가죽인 느낌입니다

 

 

뚜껑을 열면 시계 본체가 가운데에 놓여 있고 추가 제공되는 나토 스트랩,

그리고 줄 교체용 공구가 들어 있습니다

가운데 하단에는 'The Longines Heritage Classic' 이라고 써있는 명판이 붙어 있습니다

 

 

시계가 놓인 상판은 들어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상판을 들어내면 아래에는 하드커버로 된 책자가 들어 있습니다

과거 론진의 업적에 대한 내용...

대서양을 횡단한 린드버그, 비행선으로 유명한 체펠린 백작 등의 인물과

그 사람들이 사용한 론진 시계에 대한 내용이 써있는 책입니다

헤리티지라는 컨셉에 잘 맞는 책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맨 아래 서랍에는 보증 카드가 꽂힌 설명서 책자가 들어 있습니다

 

케이스를 본다면 하이엔드급 시계 못지 않은 구성을 보여주고

굉장히 신경을 썼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2. 디자인

 

1934년에 나온 론진의 시계

론진 헤리티지 클래식의 원형은 1934년에 판매된 제품에서 왔습니다

약 34.5mm 크기인 이 시계는 12.68Z라는 수동 무브먼트를 사용했습니다

 

 

헤리티지 클래식은 이 과거 모델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사진만 본다면 '같은 물건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섹터 다이얼'이라는 별명은 저 다이얼 디자인에서 나왔는데

말 그대로 다이얼을 여러 구획(섹터)으로 나눈 디자인을 말합니다

 

 

론진만의 고유 디자인은 아니고 그 시기에 유행을 했는지 다른 회사에서도

비슷한 디자인을 한 손목시계와 회중시계를 내놓은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934년 모델은 지름이 34.5mm 였습니다

당시로서는 일반적인 손목시계 크기였지만

현재 기준으로는 주로 여성용 시계에 채용되는 크기입니다

그래서 복각 제품은 크기를 키워 38.5mm 로 갔습니다

날짜 기능은 없고 시침, 분침, 초침만 있습니다

 

 

유리는 현대 고급시계 기준에 맞게 당연히 사파이어 크리스탈을 적용했는데

그래도 과거 디자인을 살리려고 테두리가 볼록 솟아 오른 형태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본체는 그리 두껍지 않음에도 크리스탈 때문에 두툼한 느낌이 듭니다

 

 

시침, 분침, 초침은 푸른색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도색을 해서 낸 푸른색이 아니라

열을 가해 산화 피막을 입혀 푸른빛을 띄게 만든 침입니다

도색보다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비교적 고급시계에 사용되는 기법입니다

덕분에 단순 도색과는 다르게 보는 각도에 따라 빛 반사가 달라지면서

침 색깔이 푸른색부터 짙푸른색, 검은색까지 다양하게 변화합니다

 

시침은 안쪽 섹터 끝을 살며시 넘어가는 길이입니다

 

 

분침은 바깥쪽 섹터라인에 살짝 못미치지만 분단위 눈금은 정확하게 짚어주는 길이입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런 미묘함이 시인성을 높여주는 요소라고 합니다

 

 

초침이 돌아가는 서브다이얼은 동심원 모양 가공이 되어 있고

초침 역시 눈금을 명확하게 짚어주는 길이입니다

 

 

용두는 론진의 옛날 로고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지름이 작지 않아서 수동감기를 할 때도 편하게 돌릴 수 있습니다

수동으로 감을 때는 거의 저항감이 없이 부드럽게 돌아갑니다

 

 

뒤로 돌려보면 케이스백이 나옵니다

시스루가 아닌 솔리드백을 채용했고 스냅백 방식입니다

가운데에는 론진의 구로고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뒷면에 써있다시피 방수는 3기압,

그러니까 비를 막아주고 손씻기 정도는 별 문제 없는 생활방수 수준입니다

 

 

이번 복각 제품 스트랩은 두가지 버전으로 나왔습니다

하나는 검은색 매끈한 소가죽 스트랩, 다른 하나는 제가 선택한 파란색 누벅 소가죽 스트랩입니다

검은색 모델은 단정하고 깔끔한 느낌을 주고

파란색 모델은 좀 더 개방적이고 캐주얼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고민이 되실 수도 있지만 어차피 시계 본체는 동일하고 스트랩만 다르게 나오는 제품이라

본인이 선택한 것과 다른 색상 스트랩을 추가 구입해서 사용하셔도 됩니다

론진의 정품 소가죽 스트랩은 비슷한 가격대 타사 정품 스트랩보다 저렴합니다

기본적으로 론진 로고가 양각으로 새겨진 핀버클이 달려 있지만

별도로 디플로이언트 버클을 구매해서 사용할수도 있습니다

 

 

론진 정품으로 나오는 디플로이언트 버클 중에서도 맞는게 있으니

론진 매장이나 서비스 센터에 문의하시면 구입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는 날이 무더운 여름인 관계로 가죽 스트랩 대신

나일론 소재 나토스트랩을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19mm 라는 러그폭이 참 애매하지만... 구하려면 구할 수는 있습니다

깔끔한 다이얼 디자인과 색상 때문에 대부분 잘 어울리는 편입니다

 

 

페를론 스트랩도 나쁘지 않게 매치가 됩니다

 

 

 

3. 무브먼트

 

1934년에 나온 과거모델은 수동 무브먼트였지만

복각 제품은 자동 무브먼트인 L893.5 를 달고 나왔습니다

요즘 론진의 기본형 무브먼트인 L888 시리즈의 스몰세컨드 변형 버전입니다

론진이 속한 스와치그룹의 무브먼트 회사인 ETA에서 2892 무브먼트를

론진용으로 개조한 L888을 공급하듯 ETA 2892의 스몰세컨드 버전인 ETA 2895를

론진 버전으로 개조해 공급하는 무브먼트입니다

ETA의 제품번호는 A31.501

 

L888처럼 프리스프렁 밸런스휠 개조가 들어가고 7진동, 64시간으로 늘린 파워리저브,

오메가 시계에 써먹던 니바쇼크 완충장치를 가져왔습니다

로터 형상이 변경된 것으로 보아 감기효율이 높아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실리콘(실리시움) 소재 밸런스 스프링입니다

'Lxxx.5' 무브먼트는 실리콘 밸런스 스프링을 사용하는데

온도변화에 따른 변형이 거의 없어서 정확성 향상에 도움이 되고

자성에 영향을 받지 않아 시계의 항자성 성능 면에서 큰 도움이 됩니다

론진과 비슷한 가격대 타사 제품들이 대량 생산되는 범용 무브먼트를

거의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는 것에 비해 상당한 장점입니다

 

 

 

 

론진의 복각 제품들은 대체로 호불호가 갈리는 편입니다

과거 디자인을 그대로 가져오다보니 낡아 보이는 느낌도 있어서

웬만한 매니아가 아니라면 구경은 하되, 선뜻 손이 가는 제품은 아닌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헤리티지 클래식, 일명 섹터 다이얼은

현대에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디자인을 가지고 나와

매니아와 대중을 동시에 만족시키면서도

남녀 공용, 드레스와 캐주얼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 잘 뽑아낸 제품인 것 같습니다